나는 아무생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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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무생각 없다!

근래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졌다. 내가 원래 상황을 단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랬는지도 모르는데 근래 고민했던 모든 일들은 그랬다…내가 바뀔 수 없는일들…내가 고민한다고 해서 무언가 변할 수 없는 일들…내가 생각해도 고민해도 무엇이 달라질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민 자체가 무의미 한거다…

난 아무생각 없다!

그냥 모든것을 다 내려 놓아버리고 싶고 빈통머리를 가지고 유럽이나 부탄왕국으로 가고 싶다… 생각없이 다 버리고 싶고 그냥 아무 생각하고 싶지 않는다…나..내 인생으로 나의 인생으로 살아야 한다.

오늘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우연히 아래와 같이 블로그의 끌씨를 읽어봐서 너무 공감하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올렸다. 난 언젠가 이 사람처럼 그건 하겠다…

몇 번을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몇 번을 되뇌어 본 말이었다. 타이밍을 찾는 것만도 일주일 가까이 걸렸다. 그래도 하던 일은 마무리 지어야 했을 때여야 했고, 오전은 일과 회의가 많으니 피해야했고, 월요일과 금요일은 가급적 배제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았다. 가장 기분 좋을 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매일매일 표정을 살피며 기분을 체크했고 그렇게 겨우 말할 기회를 포착해 ‘면담’을 요청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다른 말만 빙빙 돌리며 분위기만 잡기를 한참, 상대가 ‘얘, 오늘 좀 이상한데’라는 생각을 시작한 걸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말 말해야했다.
“저… 그만 두겠습니다.

어쩌면 모든 대한민국 직장인이 꿈꾸는 순간. 이 지긋지긋한 공간을 떠날 수 있고, 이제는 잠꼬대까지 하며 꿈에서도 할 수 있는 이 일을 벗어날 수 있으며, 더 이상 맘에도 없는 웃음을 보이며 친하게 지내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동료들을 떠날 수 있는 퇴사의 의지를 밝히는 순간. 그런데 그 순간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통쾌하지도, 기대만큼 후련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은 마치 내가 이 회사에 큰 민폐를 끼치는 것 같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뒷통수를 때리는 것 같았다. 당당함 보다는 미안함이, 후련함 보다는 찜찜함이 앞섰다. 내가 내 월급 안 받고 나가겠다는데 왜 이런 찜찜한 감정이 드는 건지, 내가 이 사람들에게 먼저 같이 일하자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왜 내가 먼저 나간다고 미안해 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사직서는 사직의 뜻을 담은 문서가 아니었다.

그저 연차를 상신하듯, 사직을 상신하는 절차일 뿐

지금까지 세 번의 퇴사를 경험했지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건 가장 어려웠고 제발 ‘사직서’라는 서류 하나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피하고 싶고 두려운 순간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절대 ‘사직서’라 쓰여진 봉투 하나 덜렁 던지고 회사를 떠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만두겠다’고 의사를 밝히면 그때부터 또 하나의 지지부진한 퇴사 과정이 시작되었다. 최소 1주에서 길면 한 달. 그나마 이 주기도 요즘은 점점 짧아지는 것 같지만.

먼저 팀장에게 사직의사를 밝히면 수차례 어르신들이 면담을 요청한다. ‘왜 그러느냐’,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느냐’ 등등 언제부터 이 사람들이 나한테 이렇게 관심이 있었는지, 왜 내가 나의 앞날을 이 사람들한테 말하고 컨펌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매번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있지도 않은 계획에 대해 말해야 했다. 때로는 이미 이직하기로 한 회사가 결정되었음에도 말하지 못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러고나면 이 사람 저 사람, 나의 퇴사 소식을 들은 동료들이 메신저로 불러내 똑같은 레파토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하며 입에 단내가 나도록 말해야 했다. 퇴사 시즌엔 하루에 커피 4~5잔은 기본이었던 것 같다.

가장 귀찮은 일은 인수인계를 하는 것이다. 어차피 다 같이 한 일이고, 매번 보고하며 컨펌 받고 진행했던 건인데도 꼭 인수인계의 순간이 되면 마치 너 혼자 했고, 너만 알고 있는 일인냥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기록하라고 했다. 기억력도 안 좋은 내가, 잘 기억도 나지 않은 옛날 일들까지 거슬러 올라가 기록해야 하는 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그래서 세 번째 직장에서부터는 아애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그 회사 사직서에 있는 인수인계서를 구해 거기다 업무를 기입하면서 일했다. 물론 그렇게 했어도 마지막에 인수인계서를 서너 차례 백 당하면서 다시 썼지만). 만약 내가 퇴사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묻지도 않고, 앞으로 30년이 지나도 절대 들춰볼 일이 없는 일인 것 같은데도 기록으로 남기길 원했다. 떠나는 마당에 “이건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냥 닥치고 썼다.

그렇게 시달리고 지칠 때쯤 드디어 ‘사직서’라는 걸 쓰게 되었다. 명목상 필요한 사직서에는 미리 협의된 것들을 다시 확인하며 기록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사직서’라는 것은 나의 오랜 고민과 힘들게 내린 결정에 대한 의지가 담긴 문서일줄 알았는데, 어차피 그때쯤이면 이미 모두가 나의 퇴사를 알고 있고 정리해야 할 것도 다 했기 때문에 명목상의 사직서, 퇴사를 위한 프로세스 중 하나의 절차일 뿐 그 이상의 어떤 의미도 없었다. 그저 협의된 퇴직 날짜를 마치 휴가계를 올리듯 쓰는 것 밖에는.

그나마 사직서에는 퇴사 사유를 기입하는 란이 있지만 거기에도 ‘개인 사정’ 정도로 간결하게 쓰는 것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나갈 때만큼은 모든 걸 다 말하겠어!’라던 나의 정의심과 포부는 ‘그래봤자 난 떠나고, 남는 사람들만 힘들 뿐인데. 내가 이렇게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텐고 오히려 떠난 나에 대한 기억만 안 좋아질텐데’라는 생각에 모든 말을 삼키고 그저 빨리 마무리되기만을 바란채 ‘상신’버튼 클릭으로 마무리를 하게 된다.

이 정도까지 오면 그래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나가도 딱히 할 일도 없고, 그저 출근하기로 한 날까지 책상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출근길도 가벼워진다. 스트레스를 주던 상사도 이 즈음이면 그저 동네 오빠나 언니처럼 살갑게 챙겨주고, 일로 괴롭히던 동료들도 일로 엮이지 않으니 꽤 재미난 사람들이 되어 같이 대화하는 것도 즐겁다. ‘원래 회사가 이랬던 건가?’라는 생각이 들며 ‘이 정도라면 몇 년 더 다닐 수도 있겠는데’라며 살짝 괜히 그만두나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끝났기 때문에 이런 느낌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그저 즐길 뿐이다.

마지막 책상정리. 마치 내가 이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책상 곳곳 남겼던 나의 흔적을 지우는 시간. 회사에서 오래 있었던 시간만큼 정리할 짐도 많고 집에 챙겨갈 것들도 많지만, 이제는 이것도 요령이 생겨 회사에는 아애 개인 짐을 두지 않는다. 내가 굳이 챙겨가지 않아도 아쉬울 것이 없도록, 어느 날 통째로 내 책상이 없어진다해도 회사는 아쉬워 할 서류가 있을망정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남지 않게 말이다. 그리고 남아 있던 명함들은 아낌없이 분쇄기 통에 넣어버린다. 이제는 이 회사 이름으로 날 소개할 일은 없을테니깐.

난 그저 또 다른 월급쟁이를 택하는 것일 뿐이었다.

언제쯤 내게도 진짜 퇴사가 가능할까?”
  
어쩌다보니 몇 번의 퇴사를 했지만, 매번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회사에 몸 담은 연차가 길면 길수록, 월급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쉽지 않았다. 고려해야 할 것도 많았고, 망설임도 커졌다. 더욱 큰 문제는 나의 퇴사는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에 하는 퇴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저 지금 이 회사가 지긋지긋하고, 저 회사는 좀더 나아보이고, 그러니 또 다른 월급쟁이를 선택하기 위한 퇴사였지 ‘하고 싶은 일은 하기 위함’이라든가, ‘꿈을 찾기 위한 퇴사’라든가, ‘새로운 도전’을 위한 퇴사‘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다른 곳은 여기보다는 나을거라 믿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거긴 거기 나름대로의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문제의 성격과 종류만 다를 뿐이지 어디든 그곳 나름의 고충과 힘듦이 존재했다. 그러니 결국 이직은 일을 하는 환경과, 함께 일하는 사람과, 월급의 액수만 바뀔 뿐이지 월급쟁이라는 본질과 월급쟁이의 고충은 그대로 있는 것이었다.

만약 내게 원대한 꿈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꼭 한 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퇴사가 정말 즐거웠을까? 지난 회사를 나온지 1, 그리고 또 한 번의 퇴사를 고민하며 그래서 정말 회사를 그만두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본다. 실컷 늦잠을 자고,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으며, 여행을 마음껏 다니는 것? 막상 주말에는 새벽같이 일어나며, 시간이 있으면 퍼져있기 십상이며, 월급이 없으면 무슨 돈으로 여행을? 결국 내 명분은 핑계에 불과하며, 잠시 도망치고 싶을 뿐, 또 다른 월급쟁이를 꿈꿀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퇴사는 아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고, 어쩌면 앞으로도 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기엔 월급이 필요하고, 사실, .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정말 하고 싶은 건 월급만큼 통장에 돈은 꽂히면서 놀고 먹는 거지만 그럴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테니깐!

그래서 대부분의 직장인들 가슴 속에는 쓰다 만 사직서가 수십 장씩 있나보다. ‘나는 다를 거야라고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멋있어 보이는 척회사를 박차고 나오는 나 같은 사람만 시행착오 끝에 그 진리를 깨닫는 것이고 말이다.